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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다시 정규직이 되었다.

by tammy-susu 2020. 9. 25.

나는 건축, 인테리어 설계 및 시공감리 일을 하고 있다. 뭐 하나에 빠져 사는 것이 대체로 환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삶이 이끄는대로 살아가는 중이라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대학시절 건축과 철학 공부에 푹 빠져있었다. 건축이란 철학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 혹은 삶의 방식으로 공간을 구축하고 아름답게 디자인을 하는 행위인데, 그것으로 삶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막을 알아갈수록 거대한 사치품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긴 슬럼프에 빠졌다. 3년정도 공부했을 쯤이었다.

 

인도 네팔 등지를 여행하며 인간 존엄을 위협할 정도의 주거환경을 보았고, 한국의 주거 사각지대 실태를 파악하고, 나의 주거를 직면했을 때, 건축이고 뭐고, 삶의 문제란 삶을 대하는 태도임을 깨달았다. 주거 환경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지만,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그것은 "건축"의 문제라기 보다는, "부동산"의 문제고, "건설 산업"의 문제, 즉,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고상하게 건축을 한다는 것은 자기만족에 불과했고, 거대한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톱니가 된다는 사실, 돈의 가치를 따르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가치관을 뭉개는 일, 그래서 무의미한 일인 것 같았다. 

 

무척 사랑하던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계속 생각나는 것처럼, 나는 모르는 사이에 건축을 애정하고 있었고, 아마도 그래서 어딜 가도, 무얼 해도,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기란 꽤 어려운 일이니까.

어리석게도,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기록도 하지 않았다. 첫 술에 배부르겠느냐는 말처럼, 그렇다, 나는 첫 술에 배부르고 싶었던 거다. 욕심이 많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과정은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인데도. 고객들은 결과에 만족했다 했음에도. 그렇게 나 자신과 건축과 치고받고 한 게 헤아려보니 11년이다. (10년이 넘는 숫자를 말할 때가 오다니.)

 

 

대학 시절 혼자 미워했던 Peter Zumthor([페(이)터 춤토르]에 가깝다)가 떠올랐다. 그 때만 해도 동영상 컨텐츠가 이정도로 활발히 만들어지고 공유될 때가 아니었는데, 인터뷰나 강의가 많아져 있었다. 일주일은 계속 돌려봤다. 그를 만나고 온 것만 같았다.

 

스터디를 하면서 보았던 그의 건축물은 직관적이면서 근원적이고, 철학적이고, 아름다웠다. 짧고 굵은 단어들이 공간에서 읽힌다는 사실에 머리가 텅 비는 것 같았다. 우물쭈물 비적비적 확립되지 않은 생각을 뒤져 만들어갔던 내 프로젝트는 휴지통에 버려져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와 같은 예술적 직감이나, 공간적 상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걸 갈수록 깨닫고 있었고, 한계를 직면하던 참이었는데, 그 후, 피터줌터처럼 하지 못할 바에야 건축을 안 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미워했다. (참 못났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건축을 하려면 optimist여야 한다고.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건축도 그러했다. 기능적인 문제든, 철학적, 삶의 방식의 문제든, 어떤 사소한 것들도 건축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지 문제에 고착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업계의 고질적인 노동착취 문제나,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축의 가치에 대한 문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 속전속결의 문제 등. (건축은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만큼 문제도 종합적이다.) 그는 스위스 사람이기에 애초에 다른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나, 그의 말은 나의 지난 시간을 압축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문제는 문제로 직시하고, 나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 

현실은 분명 낙관적이지 않지만, 낙관적인 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자신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무언가를 하는 것.

 

나는 다시 정규직이 되었다.

휴일과 퇴근이 제멋대로지만 수당은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라 강요받는, 인테리어 현장관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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