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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活着, 인생 Lifetimes, 1994

by tammy-susu 2020. 10. 8.

活着활착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구글 번역기가 말해줬다. 

공리가 그런 작품을 선택하는 건지, 이런 것밖에 섭외가 들어오지 않는건지, 공리는 왜 죄다 귀신같거나 처량한 역만 맡는지 모르겠다. 새벽 안개 같은 공허함이 있는 그의 눈 때문에 어떤 로맨스도 난 좀 차갑고 무섭게 느껴진다. 

 

외국 영화 제목은 영어로 번역된 것을 한국어로 재번역하나본데, 비영어권 영화는 대체로 원제가 훨씬 와닿는다. 기억나는 예를 들자면, <아델의 인생>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로, <봉쥬르, 앤>을 '파리로 가는 길'로 번역한 것, <Eyjafjallajokuill>을 'volcano'로, 그것을 다시 '배틀 트립 투 그리스'로 번역한 것이 있다. 주제보다는 줄거리 중심으로 수정되는 듯하다. 다 보고 나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더라도.

 

<활착>에서는 지금 좋은 일이 후에 나쁜 일이 되거나, 또 반대가 되는 순간들이 생의 전반에 과할만큼 극적으로 등장한다. [스포일러!] 부유한 지주의 아들(푸구이)이 도박으로 마지막 남은 집까지 잃는 날 뒷목 잡고 아버지 사망, 집을 취한 상대에게 얻은 인형극 도구로 공연하며 연명, 거지 신세 모면하고 부인과 아이 찾아가니 전쟁 발발, 인형극 하며 전쟁 양 진영에서 생존, 공산당이 집권하며 사유재산 몰수하기 시작하자, 지주가 된 상대 도박꾼은 반역자로 몰려 공개 처형, 주인공이 얻은 전쟁 참여 증명서로 얼떨결에 혁명집안이 되고, 공산당에 충성한다고 아들을 군사학교에 보내자, 차에 치여 넘어간 학교 담벼락에 아들 깔려 즉사, 알고 보니 차 주인은 전쟁에서 함께 살아남은 동료였고, 고위관직자가 된 그 동료는 어느 날 자본주의자로 몰려 자살, 전쟁의 충격으로 벙어리가 된 딸은 노동자 계급 동지와 결혼, 문화대혁명으로 지식인 몰살한 탓에 의사 없는 산부인과에서 애 낳고 딸은 과다출혈 사망. 그렇게 부부는 자식을 모두 잃고 손자와 사위가 가족으로 남는다. 

 

뭘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았던 순간은 어떤것도 움켜쥐려 하지 않았던 순간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무함에 통달한 듯, 주인공 푸구이는 상실에서 금방 헤어난다. "好,好." 라고 말하면서.

 

공리의 눈이 무서운 이유는 아마도, 난 허무함을 자주 직시하고, 때마다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살아가는 것은 허무한 것이니까.

한참 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있기를 연습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잇따른 상실에 이제는 딸의 임신 소식을 좋아해야 할지 망설이는듯한 잠깐의 공백과, 어딘가 서늘한 파란 엔딩 크레딧이 기억에 남는다.

 

2020.10.08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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